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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유

2019년 올해 입춘 들어오는 시간은 2월 4일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

2019년 올해 입춘의 절입 시간은 2월 4일 12시 14분이다.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띠 해라고 하며.

육십간지 중 36번째 해로  "기"는 황금색을

"해"는 돼지를 의미하므로 황금돼지띠 라고 합니다.


올해의 입춘시간은  12시14분입니다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예부터 농사 준비를 한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소를 보살피고, 재거름을 부지런히 재워두고, 뽕나무밭에는 오줌을 주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인분으로 두엄을 만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년 농사의 시작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또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때 받아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입춘한파'니,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고 간혹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입춘날 농가에서는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인다. 여기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더불어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 농가에서 이 날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보리뿌리점(麥根占)을 쳤다.

여주인이 소복을 하고 땅의 신에게 삼 배를 올리고 보리뿌리를 뽑아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부녀자들은 오곡을 솥에 넣고 볶을때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작을 이룬다고 믿었다지만 이제는 다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첩(立春帖)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에 크게 길하고
힘이 넘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으소서


부귀안락 수비금석 富貴安樂壽比金石
집은 부유하고 몸은 귀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수명은 쇠나 돌처럼 끝이 없으소서


복록정명 장락만년 福祿正明 長樂萬年
행복은 공명정대하여 까닭 없이 오지 않으니
큰 즐거움이 오래 가소서


화신양소 광풍동춘 和神養素 光風動春
정신은 부드럽고 뜻은 꾸밈없이 기르니
비온 뒤의 맑은 날에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봄을 부른다


화기치상 장락무극 和氣致祥 長樂無極
음양이 고를 때 반드시 상서로운 일을 이루고
즐거움이 끝이 없도다


춘화태탕, 발상치복 春和?蕩 發祥致福
봄은 따뜻하고 한가하니
상서로움이 생겨 행복을 부른다

2월 4일 은 기나긴 동지(冬至)의 어둠을 뚫고 대지(大地)는 
서서히 따스한 양기(陽氣)로 돌아서는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입니다.
입춘은 사물이 왕성하게 생동하는 기운이 감도는 때이며 
모든 것의 출발이고 또 한해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입춘(立春)을 맞이하는 때
집집마다 한해의 좋은 기운이 감돌아 
경사(慶事)가 넘치는 무자년(戊子年)이 되기를 빕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움츠렸던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희망의 어깨를 펴고 대문간에 立春大吉 이라는 글자를 써서 붙여 봅시다. 
그러면 더욱 가까이 따스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의 의미는 

한해의 시작인 입춘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소망(所望)이며, 건양다경(建陽多慶)은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로운 일이 많으리라는 기원문입니다 ※ 입춘첩 立春帖 대궐에서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축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글귀를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대문 또는 난간에 붙이는 문구를 입춘첩(立春帖)이라 합니다.

새해의 입춘(立春)에 이 입춘첩을 붙여 한해의 희망을 함께 기원했던 것입니다. ※ 건양 建陽 조선 말 고종 32년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에 조선이 자주국임을 선포하기 위해 최초로 사용한 연호(年號)입니다. 김홍집 내각에 의해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연호(年號)인데, 그 후 이듬해인 1897년에는 다시 광무(光武)로 연호를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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